본디 올해는 6월 7일에 진행해야 하지만 룰북을 구할 수 없는 관계로 마스터들이 진행할 수 없었기에 미뤄서 오늘 했습니다. 장소는 어린이대공원역 근처의 TicToc이라는 보드게임 카페였고요. 주최자는 저 포함해서 3명. 한 사람씩 마스터링 하고 한 파티에 플레이어 5명씩 총 15명을 초대하리라는 계획이었습니다. (총인원 18명) .... 하지만, 어제부터 갑자기 연락 안되는 사람, 오늘인 줄 몰랐던 사람(...), 전화해보니 자기는 간다고 한 적 없다는 사람 등등이 수두룩하게 발생하여 총 인원 8명에 주최자 3명 해서 11명이 되었습니다. =_=
이렇게 인원이 줄어버린 것은 우선은 주최자들 중에서 저런 거 신경 쓸 사람이 따로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잘 하겠지 하고 라라 하고 있었던 본인 탓도 크다 보지만... 원래 약속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는 일이 많으니까요. 준비한 사람은 4월부터 위자드사에 영어로 메일을 보냈다거나, 한달 전부터 룰북 나오기 전에 PDF를 통독했다거나 시나리오와 시트를 모두 한글로 번역했다거나, 감을 익히기 위해서 테스트 플레이를 진행했다거나 하는 것은 원래 다들 생각 하지 않는 법이죠.
그러니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주최측은 미리 미리 연락을 해서 구멍 뚫리는 일이 없게 해야하는 겁니다. 갑자기 약속 취소하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밉지만 사람은 원래 그런 거니까 더더욱 철저히 해야하는 거지요. (네네 속상한 거 맞아요. 저 원래 이런 거 싫어해요. 내가 신경쓴 만큼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니까 더더욱 마음 상할 일 없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이는 사람이 3명을 넘는 순간부터 오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없다면 적당히 해서는 매끈하게 될 리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저. -_-)
하여간 결과적으로 2 파티로 나눠서 진행했고 저는 덩달아 플레이어로 돌입했습니다. 남는 캐릭터를 그냥 하는 바람에 클레릭이었다죠. 다시 한 번 느낀거지만 전 정말 TRPG에서는 클레릭 타입이 아니에요. (온라인 게임에서는 클레릭도 좋아하지만....) 머리 나빠서 고민할 거 없이 공격이면 공격, 치료면 치료만 하고 싶어요. D&D의 클레릭은 매번 치료할까 공격할까 고민하게 되는 게 정말 질색이에요~~
이후에 테스트 플레이 한 번 뛰어주기로 한 게 있어서 내용은 패스하고.... 재미있는 게임이었습니다. 모든 트릭과 시나리오를 이미 알고 있는 나였지만 그래도 전투는 땀을 쥐는 맛이 있었죠. 원래 다이스 신이야 뭐가 나올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4E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상당히 쉬운 룰이었습니다. 전혀 TRPG 경험이 없으시던 최모님(저 때문에 어쩌다 끌려오셔서 수고하셨어요~)도 다행히 금새 적응해서 잘 하시더라고요. (물론 적극적이어서 더 빨리 배우신 거 같아요) 전투도 왠지 굉장히 장렬하고요.
여하튼 무사히 끝났습니다. 모두들 즐겁게 게임한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정숙조신님, 촉수군 모두 준비하느라 수고했고 오신 분들도 감사했습니다~
아래는 테스트 전경. (얼굴은 가렸습니다)
그리고 덧..... 추가 이벤트가 있어서 회사에서 거기까지 화이트보드 들고 낑낑 갔는데, 결국 진행하지 않아서 다시 강남역까지 들고 낑낑 와야했다는 우울한 일이... 들어다 준 종하야 고마워~~~ ;ㅁ;
덧2. 어제 이사님(...)이 끌고 가서 급 회식 진행. 술을 잔뜩 마시고 오늘도 오후 내내 저러고 짐들고 돌아다니고 플레이하고 하니 피곤해서 헤롱헤롱...
덧3. 이번 이벤트 준비를 위해 만든 스프링 노트입니다. 봐도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분들은 관심 있으시면 한 번 가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여기
[D&D 4E] D&D Game DayD&D를 발매하는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에서 매년 동네 하비샵(TRPG, 보드게임, 카드게임, 미니어처 게임 등을 파는 가게)을 지원하기 위해 이맘때쯤 벌이는 전세계(라고는
Leave your greetings.
EarthCrash
안녕하세요. 갈무리를 통해서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원래 리플을 거의 안 다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거시기해서 달게 되네요.
사람들이 약속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런 경우를 많이 봐와서 공감이 많이 갑니다.
특히 주최자가 열정적으로 준비한 만큼 피드백이 큰 법이죠(...)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제가 지금 군대에 있는 몸이라 그런 건 참가할 수 없어서 아쉽네요.
다만 그래서 동아리를 만들어서 D&D3.5를 굴리고 있습죠(............)
문제는 플레이어의 열정인데, 캐릭터만 3주째 만들고 있습니다 -_-
요세 훈련이라 안 한게 아니라 못 한거에 가깝지만 캐릭터를 만들 때 좀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며 만들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동아리 시간에만 깔짝 하고 평소에는 신경도 안 씁니다. 게다가 백그라운드 설정같은건 생각조차 꺼려하고 거의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식으로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고 좀 답답합니다. 과연 이 팀을 이끌고 잘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쩌다보니 제 넉두리만 적고 가네요; 다음에 그런 이벤트 여실 때 참가가 가능한 상태(전역 후?;)라면 꼭 참석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길
P.S: 그런데 국내 D&D데이가 어딜 통해서 전파가 된거죠?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중심이 어딘질 모르겠네요.
저런... 군에서 하시는 거라면 더하겠어요.
TRPG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적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거죠. 별 관심 없이 시작한 거니까 더욱 그렇고요.
이전에 로키님과도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TR이라는 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중요도를 상당히 높게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_=
D&D Game Day는 전파가 된 게 아니라 어차피 '신청->발송' 형태이기 때문에 제가 아는 분이 위자드 사에 신청을 해서 진행하게 된 겁니다.
시스템 : 천라만상 마스터 : 이xx 플레이어 : 최xx : 아키유 시라이누 남 21세 사무라이 엄xx : 쿠사나기 카무이 남 19세 총창사 김xx : 마루유메 시바 여 17세(겉보기) 전투용쿠그쯔 유xx : 쿠도 시즈카 여 17세(겉보기) 쿠그쯔
나는 쿠그쯔. 시간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않는 존재.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형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전에는 나도 가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여행해 왔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여행이 계속되면서 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는 변하지 않는데 아버지는 계속 나이가 들어만 가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에게 그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내포하고 있을 그 무시무시한 진실을 어느 정도는 피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또 몇 개인가의 계절이 지난 후, 아버지는 몸져 누우셨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분은 내가 의도적으로 피해왔던 진실을 말해주고야 말았다. "시즈카, 사실 너는 인간이 아니다. 넌.. 넌 단지.. 나무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은 쿠그쯔에 불과하다." 사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나이를 먹지 않으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태어난 존재. 난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버지가 있었고 그 분은 세상과 나 사이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나의 탄생 방식 따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앞에선 언제나 사랑스런 딸이었고, 그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이 세계는 나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에는 세상도 지금처럼 시끄럽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드디어 세상에 혼자서 맞서게 되었다. 세상은 결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나는 단지 370만석이라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물건'에 불과했다. 끊임없이 난 내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비웃음뿐이었고, 날 인간으로 본 사람들은 대부분 생명으로 그 대가를 치뤄야만 했다. 난 그때마다 생명을 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나를 인형이라고 비웃었지만 과연 그들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태어난 방식으로만 정의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때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배란 것은 폭풍이라는 존재를 만나고 나면 결국 무력한 나무 조각으로 화해버리고 만다. 그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고 정신 차렸을 때에는 내 주위엔 단 세 명뿐이었다. 강한 힘에 대한 욕망으로 스스로 인간이기를 버린 무뚝뚝한 사무라이와 자기의 총창을 때론 애정에 찬 눈길로, 때론 과거에 대한 짙은 회환의 감정으로 보곤 하던 젊은 총창사. 그리고, 마지막은 나와 비슷한 존재이지만 - 인간은 그 사고의 방식으로 정의되는 것이기에 - 근본적으로 나와는 다른 존재인 전쿠용 쿠그쯔였다. 물론 나와 시바 - 그 전투용 쿠그쯔 - 는 주의 깊게 얼굴을 가리고 이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일행 네 명은 노예상에게 잡혀버렸고 나와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난파한 곳이 하필이면 무법천지로 유명한 에토 섬이라는 것이 나쁜 운이라면 나쁜 운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나가던 일련의 패잔병의 도움으로 그들의 손아귀에서는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고, 우린 에토 섬을 떠나기 위해 자유항인 비와로 향했다. 그리고 비와에서 일주일 가량 떨어진 거리의 한 마을, 우사기가와 라는 곳에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후우.. 날도 어두우니 이만 이 마을에서 묵어가야겠군요." "예, 이곳에도 어딘가 머물 수 있는 곳이 있겠죠." 주변을 살피고 있을 즈음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한 명 보였다. 행동거지로 보아 이곳 주민이리라 파악한 시라이누 - 사무라이 - 는 그를 불러세웠다. "이봐. 잠깐 이리 좀 와 봐." "예? 나, 나으리.. 저 말씀이십니까?" 일반인들의 눈에 온 몸에 108개의 주를 박아넣고 있는 사무라이라는 존재는 그대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럼 여기에 너 말고 또 누가 있나." "예. 그런데.. 왜 부르셨는지요.." "이곳에 하룻밤 머물고 갈 곳이 있는가." "저쪽으로 가면 여관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쪽으로 안내하도록."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집에 마누라와 애새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고 있는 남자를 보며 아키유상은 혀를 찼다. "쯧. 집에 마누라와 자식이 있다고 했나? 그들의 목숨이 아까우면 어서 안내하도록 해!" "예? 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벌벌 떠는 남자를 앞세우고 곧 우리는 헐어빠진 여관 앞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는 가라는 한마디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그럼 이만.."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방을 나누어 잡았다. 그 이후 우리는 잘 채비를 했으나 시라이누는 바깥에 나가 마을 상황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그가 나간지 얼마 안되어 마을 야경꾼과 부딪쳤다. "잠깐." "무슨 일입니까?" "이 마을에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무슨 일인가?" 작은 마을인 만큼 새로 온 사람은 눈에 띄이기 마련이고, 특히 보통 사람도 아닌 사무라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야경꾼에게 대충 둘러댄 그는 이 근처 상황이나 마을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곳 토문땅은 에토섬의 다른 곳에 비하면 천당이라 할 수 있겠지. 하스하에 계신 사이고 이에야스 님께서 정치를 잘 해 주시니 말이야. 전에 묘다이였던 사람을 쫓아낸 후 그분께서 영주님이 되셨지." "흐음.. 좋은 곳이군요. 헌데 우리 일행은 이제부터 비와항으로 가려는데, 여행하는데 필요한 정보라도 없습니까?" "뭐, 자네 일행들이야 관계 없겠지만 말이야, 요새 큰 물건이 두 개나 낚였다는 소문이 있거든. 윗분들 일이니 나야 모르지만 난리가 난 모양이야. 여기저기 검문소들이 난리가 났다는 소문이 있어. 어? 그런데 자네 안색이 별로 좋지 않군, 설마하니 자네가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하~ 제 행색을 보십시오. 제가 어딜 봐서 그런 어마어마한 물건을 들고 다닐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니 저는 이만 여관으로 돌아가도록 하죠. 말씀 고마웠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면서 돌아온 시라이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잠을 청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상황에서도 나와 시바를 버리지 않았던 그의 태도가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다.
그날 밤, 시바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듯한 기분에 퍼뜩 잠이 깨었다. 그리고 잠에서 깬 그녀가 본 것은, 어느새 묶여서 자루에 넣어져 매여 있던 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사람이었다. "젠장, 누구야!" 그녀의 외침과 함께 그녀를 막 묶으려 하고 있던 남자가 바로 칼로 공격을 시작했다.
시라이누와 카무이는 옆방에서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젠장할, 녀석들이 분명해.' "저는 창문 쪽으로 갈 테니, 아키유 상은 문쪽으로 들어가세요." 카무이의 말에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 문을 연 순간 아무런 예고 없이 칼날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겨를 없이 상처를 입고는 주위를 살폈지만 좀 전의 그 매서운 기운은 어디로 사라진 지 주변은 고요할 따름이었다. '이거, 심각하군.' 주변을 한번 살핀 후, 한숨을 내쉬곤 그 자리에서 그는 사무라이화 했다.
조심 조심 다가가 창문을 연 카무이가 본 것은 열심히 싸우고 있던 시바와 어깨에 매여진 나였다. 그는 한눈에 사태를 파악하고는 바로 나를 매고 있던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사무라이로 변한 시라이누도 문을 부수고 달려들었고, 비로소 사태는 난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참 싸우고 있던 중이었다. "쳇, 나눠 먹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군." 나를 매고 있던 녀석이 이 말을 하고는 신호용 호루라기를 꺼내서 불기 시작했다. 그가 지원군을 불렀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나를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음이 초조했으나 일단은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싸우고 있었을 때였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나 싶더니 방 안을 겨누고 총을 쏘고 있던 카무이의 등 뒤를 무언가가 쿡 찌르는 게 느껴졌다.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돌아서라." 그녀석이 불렀던 응원군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마침 안에서의 싸움도 다 끝나가던 참이었으므로 그는 뒤돌아볼 겨를 없이 창을 짚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세 명을 모두 물리친 후 밖을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은 시라이누와 카무이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여관 주위를 횃불을 든 병사들이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둘을 넘겨라. 여기에서 조용히 넘겨주면 나머지 둘은 무사히 보내주겠다." 소리가 난 곳을 보자 말을 탄 사람 하나와 옆에 서 있는 조그마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몸을 잘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형태로 보건데 여성인 듯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여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이나 생각해보도록 하죠." 하지만 여관 주위로는 이미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고민하던 끝에 우리는 결국 극약 처방을 하기로 했다. "우리를 곱게 보내주지 않으면 이 여자의 목숨은 없는 줄 알아라!" 말을 탄 사람이 잘 보이는 위치에서 시라이누는 내 목에 칼을 들이댄 채 외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비웃음 뿐이었다. "장난치는 거냐! 한 패인 거 다 알고 있다!" "젠장할,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시라이누는 그대로 내 목에 칼을 그었고 불에 댄 듯한 아픔과 함께 어느덧 목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쪽은 그런 정도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훗, 더 해보지 그래?" 몇 마디 말이 오가자 상황은 그대로 고착상태에 이르러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기마무사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무사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엄청난 미성이었다. "카사라기님, 어차피 저녀석들 그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모양입니다. 여기에서 놓쳐서 문책 당하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두 없애버리고 놓쳤다고 하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하지만 미즈키님, 그래서야 어디.." "그쪽이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말만 나가지 않는다면 카사라기 님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얼핏 듣기에도 납득이 안 가는 분위기였다. 이런 곳까지 따라 나오고 또 카사라기라는 인물이 존대하는 걸로 봐서는 분명히 미즈키는 그의 상관격인 듯 했다. 하지만 그녀 쪽에서 하는 말로 봐서는 그를 엄청나게 위해 주고 있었다. 둘 사이에 지위 계통만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 당시 중요했던 것은 우리의 거취 문제였고, 미즈키가 상관이라고 판단한 우리는 나의 입을 통해 곧 그녀와의 대화를 요구했다. "괜히 목숨 걸지 말고 그녀들을 이쪽으로 넘기는 쪽이 좋을 듯 싶군요." "그럴 생각이 없다면.?" "선택이야 그쪽 마음이지만 그로 인해 일어지는 일들도 역시 여러분들의 선택의 결과겠지요." 잠시 말이 오갔지만, 결국 10분간의 유예기간을 받았을 뿐이었다. 시라이누와 카무이는 막막한 듯, 아무 말 없이 조그마한 장기알만 가지고 놀고 있었다. 멍청히 있던 나에게 시바가 끌어선 말을 걸었다. "쿠도상, 어차피 쿠그쯔란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냥 저쪽으로 넘어가자고요." "전 인간입니다." "아무리 우긴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당신은 나와 같은 인형이라고요." "당신은 인형일 지 몰라도 나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그 때, 밖에서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10분 다 되었다. 결정했나?" "다시 말 해서 뭘 해! 우릴 놓아주라고! 안 그러면 상품에 흠이 갈 거야!" "못 데리고 갈 밖에는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지." 미즈키는 카사라기 쪽을 바라보고 말을 꺼냈다. "이제 제가 맡겠습니다. 지금부터의 일은 모두 제 재량으로 한 일입니다." 카사라기는 승낙을 했고 바로 미즈키가 외쳤다. "야마다, 니타, 후유자네!" 그때까지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은 무언가 뒤에 무서운 것이 있는 듯, 계속 주춤거리고 있었다. 헌데 이 말을 듣더니 썰물에 물 빠지듯 옆으로 좌악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 틈으로 엄청난 거구의 사람이 나타났다. 보통의 경우 사무라이가 되려면 몸에 108개의 주를 박아넣는다. 그 이상 박으면 인간의 몸이 견디질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끔가다 그걸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지금 나타난 사람 세 명이 그 경우인 듯 했다. 전력의 차이는 처음부터 명약관화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괜한 오기를 부려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은 없었다. 시바도 같은 생각인 듯 했다. 우리 둘은 밖으로 나갔다. "생각이 바뀌었나 보지?" 나는 절을 했으나 시바는 그대로 서있었다. 사람은 각각 나름대로의 행동 방식이 있는 법이니 별 말은 안했다. "우리가 순순히 갈 테니 안의 두 사람의 신변을 보장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즉시 풀어줄 것과 통행증을 주었으면 합니다." "일단 살아남는다는 건 약속할 수 있으나 통행증은 시간이 걸려서 힘들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뭘 믿고 그쪽으로 간단 말입니까!" "이 카사라기, 무사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신변을 보장해주겠다." "풋, 요새 무사의 명예라는 것이 땅바닥까지 떨어진 모습을 하도 많이 봐서요."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각각 후유자네와 미즈키가 새로 부른 다케다라는 사무라이의 어깨에 앉아서 그 사이고라는 영주의 성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가는 동안 판단한 바로는 확실히 미즈키는 카사라기를 사랑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카사라기 쪽은 왠지 모르게 꺼리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미즈키의 얼굴은 그녀의 목소리와는 딴판으로 정말 보기 흉했다. 쿠그쯔의 경우 한쪽을 신경 쓰면 다른 한쪽이 모자란 경우가 있다던데 그런 경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6일 간의 여행 끝에 도착한 하스하의 히메지 성은 상상외로 거대하고 멋있었다. 전체적으로 높이 솟은 성의 모습은 막 하늘로 날아가려는 백로를 연상시켰다. 10층 높이의 천수각이 그런 이미지를 더욱 강조시키는 듯 했다. 성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는 남자들과 곧 떨어졌다. 각각 따로 이끌려 들어간 방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말 인형처럼 새로 단장하고는 성주를 만나러 갔다. 양쪽에 가신들이 6명씩 앉아 있었고 성주는 위쪽에 있었다. 미즈키는 상당한 위치인 듯, 가신들과는 달리 성주의 바로 아래쪽에 앉아있었다. 역시, 그녀의 추한 얼굴은 가장이었던 듯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카사라기의 위치였다. 그는 가장 말석에 앉아있었다. 성주의 얼굴은 발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고 음성만이 들려왔다. "이리 가까이 와 봐라." 나와 시바가 다가가자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예쁘군." "수집품이 추가된 것 축하드립니다!" 주변의 가신들이 일제히 말했다. "그래. 카사라기. 이번에도 잘 해냈다. 요새 일을 참 잘 처리하는군."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대로 성에 들어온 것이지만 당장 걱정되는 건 따로 헤어진 두 남자의 상황이었다. 시바가 그것에 대해 곧 말을 꺼냈다. 그러자 영주 쪽에서 오히려 놀랐다는 듯한 반응을 보내왔다. "음? 카사라기! 그들을 그대로 살려뒀는가? 처치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옛!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듯 해서 일단 감옥에 넣어뒀으나 원하신다면 내일 당장 처치하겠습니다." "역시 무사의 명예란 시궁창에 구른 지 한참 되었어.." 시바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둘의 상황이 걱정되었으나 시바가 떳떳하게 주장한 덕분에 그들의 생사를 보장받게 되었고, 곧 그곳으로 불러 대면까지 시켜주었다. 그 사이 고생을 좀 한 듯 더 지저분해지고 수척해지기는 했지만 별 탈은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쪽은 돌아보지 않았다. 인형으로 취급받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네 녀석들이 저것들의 마음을 어떻게 빼앗았는지는 모르나,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구나. 비와항까지 보내줄 테니 좋은 꿈을 꾸었다 생각하고 다시는 근처에도 얼씬도 하지 말거라." 둘은 아무래도 발걸음이 놓이지 않는 듯 주춤거렸다. 그러다가 카무이가 시바에게 한마디 던졌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이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렇게 둘은 떠나갔다. 그러고 보면 시바는 전투를 목적으로 태어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에 있어서는 언제나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과 연관되어 있는 듯 했다. "자, 그럼 이만 축하연을 열어볼까?" 영주의 명과 함께 술상이 날라져 왔고, 우린 우리를 붙잡은 영주의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미즈키, 나, 시바의 순서로 돌아가며 술을 따랐고, 영주에게서도 직접 한잔씩 받아 마셨다. 영주는 시바의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은 듯 그녀에게는 특별히 큰 잔을 따로 가져다 따랐다. 조금 후 그녀가 잔을 소매 속에 숨기는 것이 보였다. 연회가 끝나고 우리는 미즈키의 방으로 같이 갔다. 다시 술상을 봐 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으나 결론은 우리를 회유하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저도 이 성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 했었죠. 자살을 기도해보기도 하고 몰래 술잔을 숨기기도 하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니 다 별로 쓸모가 없더군요. 지금 이 상황에서 적응하며 사는 게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요? 어차피 우리에겐 시간이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죠. 시간이 흐르면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뭐, 영주는 우리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그다지 간섭하지 않으니 재주껏 즐기면서 사는 게 능력이겠죠." "그래서 당신은 카사라기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건가요?" 시바의 말에 미즈키의 안색이 잠시 흐려졌다. 우리는 의미 없는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헤어졌다. 방을 막 나오려는데 미즈키가 시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잔 어디에 쓰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용 없을 거에요." 그렇게 첫날은 의미 없이 지나갔다.
다음 날 일상적인 몸단장을 마친 후 시바와 나는 성주와 아침을 함께 했다. 할 일이 없는 우리는 낮의 시간을 함께 샤미셴을 타며 노래부르는 것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은 영주가 찾아왔다. 다음 날 아침도 역시 영주와 함께였고, 대낮 역시 전날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시바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새장 속의 새처럼 불행해 보이다가도 어느새 '이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돼'라고 중얼거리며 행복해 하곤 했다. 억지로 자기최면을 걸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녀는 강해 보이지만 의외로 깨지기 쉬운지도 몰랐다. 그날 밤 영주는 그녀의 방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그대로 돌아갔다. 시바가 끝까지 버텼기 때문이다. 그날의 아침 역시 영주와 함께 했고, 그는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고 평소 때와 다름 없이 행동했다. 역시 하루하루 말라 가는 건 시바와 나뿐인 듯 했다. 밤, 시바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녀의 방에 찾아갔던 영주가 곧 내방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전에 숨겨두었던 사기접시를 깨어 손목에 대고는 자살하겠다고 버텼다. 영주는 처음에는 황당해했고 조금 지나자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의 우리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 저항은 투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시바를 그대로 부숴지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영주와 그녀 사이에 들어가 깊게 절을 했다. "그녀는 아직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미천한 소녀라도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신 모시겠습니다." 그는 혀를 찼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뒀다가 말을 꺼냈다. "그래, 일주일이면 되겠느냐?" 시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주일 후에 찾아오겠다. 그때까지 마음을 정리하도록. 만약 그때가 되어도 이대로라면 널 다케시 카즈히사에게 보내겠다. 그는 나처럼 점잔하지는 않을 거다." 그 이후로도 계속 시간이 지나갔다. 시바는 계속 손을 내려다보면서 '칼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돼'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경호원을 하나 얻었다. 그는 카사라기였다.
한편 우리를 만나고 나온 시라이누와 카무이는 죄수 호송차에 실려서 비와까지 보내졌다. "도대체 영주님께서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목숨 부지하고 나온 건 너희가 처음이니 다시는 성 근처에도 나타나지 말아라!" 그들은 둘을 내려놓고는 다시 하스하로 돌아갔다. 그들은 곧 여관에 짐을 풀었다. 둘은 아무 대화 없이 고향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았다. 배는 일주일 후에나 있다고 했다. 여관 앞 평상에서 끊임없이 장기를 두며 둘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카무이가 말을 꺼냈다. "그녀들은 그곳에서 행복하지? 마지막에 말로 보아선 그다지 불행해 보이지는 않던데.."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겠지." 둘은 또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들 사이에는 장기알 놓는 소리만 똑 똑 들렸다. 그러다 시라이누가 장기알을 놓으며 문득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그녀가 아직 내게 소중한 것이 되기 전이라서 다행이야."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손놀림은 그를 배신했다. 지나치게 힘을 준 듯 장기알은 그대로 뚝 부러지고 말았다. "이런, 장기알이 부러졌군." 그는 묵묵히 실로 감아 장기알의 모양을 돌려놓았다. 그렇게 보낸 지 삼일 째 여전히 장기를 두고 있던 두 사람 앞에 한 무사가 나타나 끼어들었다. 자신을 '키무라 료오마'라고 소개한 그는 이것저것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놀라운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소문 들었습니까? 어떤 바보 같은 녀석들이 두 여자 버린 이야기 말입니다." 순간 둘의 몸이 경직되었으나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다시 반문했다. "뭐, 당신들이 그 사람은 아닐테니 하는 말입니다만, 참 무정한 사람들이죠. 그녀들은 분명 그곳에서 불행해 하고 있을 겁니다. 저 같으면 절대 그런 행동 안해요. 목숨이 사라지더라도 한번 버텨보지요." "이 자식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듯 카무이의 총창이 그대로 그의 목으로 향했다. "어 어? 이게 무슨 노릇입니까! 설마 그 두 머저리가 당신들은 아니겠죠?" "이런.. 이 녀석이 술버릇이 좀 고약해서 그럽니다. 설마 우리 둘이가 그 사람일라구요." 시라이누는 여전히 씩씩대고 있던 카무이를 눌렀다. "흠 흠, 젊은 친구가 참. 어쨌거나 나는 내일 하스하로 일자리를 찾아 떠날 예정이랍니다. 혹시 당신들도 마음이 있소?" 하스하란 우리가 있던 바로 그곳이었다. 물론 그 둘은 이미 근처에도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이미 들은 바 있다. 그들이 그곳으로 간다는 건 이미 목숨을 걸고 우리를 구출해 내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곳에 가면 크게 한자리 할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요?" "당연하죠. 어때요. 마음이 있으면 내일 아침 이곳으로 찾아오십시오. 기다리지는 않을 테니 빨리 와야 합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 료오마는 떠나갔다. 다시 남은 두 사람, 밤새 고민한 끝에 결국 다시 하스하로 향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료오마를 찾아갔다. "역시 오셨군요. 나타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가볼까요?" 하루 종일 걸어서 저녁때가 되자 성 바로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으나 문은 이미 닫혀있었다. 별 수 없이 그들은 그곳에서 하루 밤을 머물렀고 다음 날 아침 성문을 향했다.
해자 앞에까지 이르자 그들은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경비가 우리 얼굴을 기억하고 있겠지?" "으음.. 분명히 기억할텐데, 다시 돌아오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었잖아." "어떻게 한다." 그들이 이렇게 고민하고 있던 사이, 료오마는 어느새 해자를 다 건너가선 외치고 있었다. "어이~ 빨리 오라고요~ 뭐하는 겁니까~" "잠깐만 기다려봐요. 이야기 할 게 좀 있어서요." 그들이 그렇게 의논을 하고 있던 사이 료오마는 두 번을 더 불렀고 여전히 기다리라는 대답이 나오자 그대로 성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래, 어쨌거나 한 번 부딪쳐보는 게 좋겠지. 가 보자고!" 둘은 용감하게 성으로 향했다. "정지! 너희들 여기에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텐데!" 아니나다를까 문지기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행이 있었다고요. 어디 갔지? 키무라상!" 발걸음이 굉장히 빠른 듯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문지기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누굴 말하는 건가, 조금 전에 들어왔던 분이시라면 영주님인데, 설마 그분과 일행이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뭐라고! 이런 젠장할." 두 명은 문지기를 밀쳐내고 바로 료오마, 아니 영주가 간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한 100m 뛰었을까? 그들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무언지 모르는 큰 상자를 하나 들고 있는 카사라기였다. "뭐야!" "이미 늦었으니 이것을 받고 조용히 돌아가라는 주군의 전갈이다." "제기랄, 늦긴 뭐가 늦어! 이딴 거 필요없다고!" 둘은 내민 상자를 그대로 뒤로 던지고는 냅다 앞으로 뛰었다. 부서진 상자에서 새어나온 돈들이 주위를 굴렀다. 그런 그들 앞을 기다렸다는 듯이 전에 보았던 그 덩치 큰 세 명의 사무라이들이 막았다. "내가 막을 테니 넌 뛰어가!" 시라이누의 외침에 카무이는 곧장 앞으로 뛰기 시작했으나 다시 나타난 미즈키의 칼날에 결국 천수각 계단을 오르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면서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새끼야! 인간이 네 손바닥 안에서 노는 장난감인 줄 아냐!" 그런 그를 뒤로하고 시라이누도 우리가 있던 천수각 10층을 향해 마지막 돌진을 시작했다.
그 때 우리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나 싶더니 카무이의 마지막 외침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자세한 내용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그의 것이 분명했고 정황으로 봐서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우리는 내려가는 계단까지 갔으나 병사들에게 제지를 당했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벗었다.
사무라이화 한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었던 시라이누는 곧 영주와 조우하게 되었으나 그 역시 돌아가라는 말뿐이었고 그는 10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7층에서 결국 쓰러져버린 그 역시 마지막으로 위를 향해 외쳤다. "나같이 좋은 남자는 포기하도록 해!" 지금까지 생각하는 거지만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의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어쨌거나 그 또한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영주는 정확히 일주일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떠나가도 좋다." "어디로.. 말씀입니까?" "너희가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가라. 풀어 주는 거다." 그리고 그는 돌아갔다. 우린 짐을 챙기기 위해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짐을 챙겨서는 시바를 기다렸다.
방으로 돌아간 시바 역시 무언가에라도 홀린 듯 짐을 묵묵히 챙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 손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돼.." 한참동안 물끄럼히 손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떤 결심을 한 듯 탁자쪽으로 가 종이와 붓을 들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시바가 나타나지 않아서 걱정이 된 나는 그녀의 방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맞은 건 아무도 없는 빈방과 곱게 놓인 편지 한 장뿐이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의 감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 더 나를 위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단 몇줄만이 적혀있는 글을 읽다가 아래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창가로 달려간 나는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저 아래 10층 밑에 이미 생명이 사라져버려 다시 나무인형으로 화한 시바를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미쯔이는 시바를 들고 어떤 곳으로 향했다. 창고인 듯한 곳으로 간 그녀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래, 어째서 당신들은 모두 같은 선택을 하는 걸까. 이번만은 성공하길 바랬지만.." 시바를 한쪽에 곱게 놓아둔 후 그녀는 다시 나갔다. 그런 미쯔이의 뒤에 수많은 나무인형들의 보였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아픈 기억을 하나 남긴 채 히메지 성을 떠났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아무도 사이고라는 인물을 기억하지 않고 있지만 나에게 슬픈 기억을 심어주었던 그녀와 그들의 덕택에 그 이름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송곳처럼 박혀 있다. 모르겠다. 자신이 인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가던 시바는 목숨을 버렸고 나는 살아남아 또다시 많은 시간을 여행해 왔다. 도대체 어느 쪽이 더 인간다운 것일까? 어쩌면 나는 '인형'이라서 그 판단을 절대 내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덧말 : 아아, 글 솜씨를 늘려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리플인데, 리플이기 때문에 소설과는 역시 다르군요. 이번엔 소설로 만들어보자, 하며 시작했지만 역시 리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때는 멋있었지만 기억이 안 나는 것들이 대부분이군요. 대부분 기억에 의존하는 터라.. 내가 한 대사조차 생각이 안 난다.;; 세이지 언니도 리플 쓰겠다고 했으니 기대중입니다. 언니는 플레이 내용도 열심히 적은데다가 다른 입장에서의 글이란 언제나 즐거운 법이지요. ^^ 플레이 때야 멍청히 떠났지만 사실 시즈카는 마지막에 남으려고 했었어요. 지켜보고 싶어서.. 하지만 선언을 안했으니.. 으윽. ㅜㅜ 응원해주는 세이지언니와 선우언니에게 여기를 빌어 감사. 하지만 역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건 능력 부족인 듯 싶습니다.(창조력 부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적성검사마다 평균 이하였다고요!) 이번 주 금~월까지 여행을 갑니다. 고로 저의 밀크티 리플은 일주일 쉬게 되었습니다. 반년 이상을 일주일에 한 개씩 써왔는데, 모처럼의 휴가로군요. 자기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으면서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건 역시 제가 아직 어리기 때문인가 봅니다. 윽. 역시 퇴고 안하고 올립니다. 여행 가기 전에 올리려니.. 흑. ㅜㅜ
Leave your greetings.
안녕하세요. 갈무리를 통해서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2008/06/29 10:17 [ Permalink : Modify/Delete : Reply ]원래 리플을 거의 안 다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거시기해서 달게 되네요.
사람들이 약속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런 경우를 많이 봐와서 공감이 많이 갑니다.
특히 주최자가 열정적으로 준비한 만큼 피드백이 큰 법이죠(...)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제가 지금 군대에 있는 몸이라 그런 건 참가할 수 없어서 아쉽네요.
다만 그래서 동아리를 만들어서 D&D3.5를 굴리고 있습죠(............)
문제는 플레이어의 열정인데, 캐릭터만 3주째 만들고 있습니다 -_-
요세 훈련이라 안 한게 아니라 못 한거에 가깝지만 캐릭터를 만들 때 좀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며 만들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동아리 시간에만 깔짝 하고 평소에는 신경도 안 씁니다. 게다가 백그라운드 설정같은건 생각조차 꺼려하고 거의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식으로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고 좀 답답합니다. 과연 이 팀을 이끌고 잘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쩌다보니 제 넉두리만 적고 가네요; 다음에 그런 이벤트 여실 때 참가가 가능한 상태(전역 후?;)라면 꼭 참석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길
P.S: 그런데 국내 D&D데이가 어딜 통해서 전파가 된거죠?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중심이 어딘질 모르겠네요.
저런... 군에서 하시는 거라면 더하겠어요.
2008/06/29 21:46 [ Permalink : Modify/Delete ]TRPG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적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거죠. 별 관심 없이 시작한 거니까 더욱 그렇고요.
이전에 로키님과도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TR이라는 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중요도를 상당히 높게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_=
D&D Game Day는 전파가 된 게 아니라 어차피 '신청->발송' 형태이기 때문에 제가 아는 분이 위자드 사에 신청을 해서 진행하게 된 겁니다.
딴 데는.. 용산 미국부대 내 하비샵에서 한다고 들은 거 같네요.
나야 뭐 주최측이 고생한거에 비하면야...
2008/06/30 12:10 [ Permalink : Modify/Delete : Reply ]여튼 재미있었고 수고 많았어 =.=/
30분까지 오라고 하자 25분에 도착한 멋진 종하군 화이팅! >_<
2008/06/30 13:32 [ Permalink : Modify/Dele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