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3일만 지나면 부끄러워서 머리를 쥐어뜯을 테지만 나야 어차피 작가는 아니니.. (...)
올려둔다.
nWoD:V'tr. ToF 메리트 획득을 위한 몸부림. (...)
그리고 올리면서 닭살에 몸부림. (...)
(세부 사항은 많이 바꼈으니 공식 스토리로 착각하지 말 것. 어차피 여기 올리는 시점이 ToF에서 컨펌 받기 전이라 많이 다를 가능성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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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둔다.
nWoD:V'tr. ToF 메리트 획득을 위한 몸부림. (...)
그리고 올리면서 닭살에 몸부림. (...)
(세부 사항은 많이 바꼈으니 공식 스토리로 착각하지 말 것. 어차피 여기 올리는 시점이 ToF에서 컨펌 받기 전이라 많이 다를 가능성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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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죽음을 확인하고 재산을 정리하는 일은 아직까지 남아있던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끊어나가는 의식으로 느껴졌다. 신분은 '실종자'에서 일반인으로 돌아갔지만, 더이상 내가 그들의 사회에 들어갈 자리는 없는 것이다.
아직 일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회사에 나가거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하던 기억들은 먼 옛날의 추억처럼 느껴진다.
빛이 두렵지않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심장이 뛴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흡혈의 쾌락에 취해있는 시간 뿐. 그 순간만은 이미 죽어버린 나의 심장이 다시 뛰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앞으로 몇 년이나 이러한 상태로 버텨야할 지 알 수 없다. 오랜 시간을 지내온 엘더들은 익숙해져서 관계가 없어진 걸까? 내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펴봤다. 다들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이제 내가 인간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건 갈증이다. 일년 전만 하더라도 먹는거야 어떻게든 되었지만, 포식자의 입장에 선 현재로서는 그게 제일 문제랄까. 요 근래 겪었던 여러가지 사건들에 이르러서야 생존 그 자체가 커다란 목표가 되어버렸다.
뭘 어디서 찾아 먹어야 좋을까 궁리하는 꼴이라니.. 입안에서 작게 욕설을 굴린다. 그리고 익숙치 않은 포식 동물은 약간 겁에 질렸다.
다시 움직이려던 참에 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지나는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고즈녁해 보이는 건물에 처음부터 건물과 같이 한듯한 작은 간판, 내부가 보이지는 않지만 어찌보면 수줍고 어찌보면 당당한 신사복의 디스플레이가 전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앰블렘이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자신만만한 맞춤양복점인 터였다.
다행히도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모양이라 Open 표지판이 매달려 있는 가게의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갔다.
예상대로 고풍스런 향취가 풍기는 실내다. 참고용으로 걸려있는 몇 가지 천의 샘플을 제외하고는 깔끔한 인테리어. 목재로 이루어진 벽면에서는 따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딸랑거리는 문의 방울 소리가 사라진 후 한참이 지나서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슬슬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나왔다.
"어서오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안경을 벗으며 나타난 이는 그야말로 그린듯한 양복점 주인이었다. 히끗히끗 새어가는 머리카락에 단정하고 조심성이 옅보이는 얼굴. 몸의 일부인 양 자연스러워보이는 양복에 이르기까지 더하고 뺄 곳이 없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예약하셨던가요."
"아닙니다. 지나가다 가게가 보여서..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알았다고 하고는 자리를 권해줬다. 곧이어, 차와 담배가 권해지고 적당한 샘플을 내줄때까지의 동작이 너무 깔끔해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별 말 없이 한동안 샘플을 뒤적인 후 입을 열었다.
"이 가게는 연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글쎄요.. 한 25년 정도 되었군요. 막 아들놈이 태어났던 때이니.."
별로 다른 뜻이 있어서 물어본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묘하게 뒤를 끄는 말투라거나 살짝 섞여들어가는 한숨이 엉뚱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눈을 바로 보고 약간의 술수를 부렸다.
"무슨 일 있으신 모양이군요. 괜찮지 않습니까? 어차피 지나갈 사람에게 이야기해보시는 것도. 들어드릴테니 '고민 있으시면 말해보세요.'"
그 이후 듣게 된 이야기는 어찌 보면 흔한 사연이랄까.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 갑자기 자살을 했다. 그리고 유서에 남아있던 내용은 가게를 담보로 돈을 몰래 끌어다 썼고 갚지 못하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것.
정신 없는 와중에도 가지고 있던 돈으로 일단 갚을 수 있을만큼은 처리를 했지만 결국은 가게를 팔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버린 거 같다고 했다.
"아... 어쩌다가 제가 이런 이야기를 모두.. 쓸데없는 이야기라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가끔은 털어놓을 곳도 있어야지요."
이야기를 다 하고 난 후 정신을 차리자 당황하는 듯해서 적당히 웃음으로 무마시켰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가게가 팔리면... 글쎄요. 어딘가 요양원이라도 들어가야지요. 계속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작게 한숨을 쉰다. 더이상 목적도 없이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치고 지금 상태는 굉장히 침착해보였다. 그래서, 문득 나는 그가 어떤 맛일까 궁금해졌다.
잠시 손을 빌릴 수 없을까하고 말하자 갑작스런 요구에 의아해하는 그를 간단한 명령으로 무력화시키고 손목에 이빨을 박아넣는다. 경악과 갑작스런 고통에 눈을 부릅뜨는 것도 잠시, 곧 숨이 가빠지면서 표정이 풀려간다.
이 단정한 남자의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 또 누가 있었을까 하는 짖궂은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왈칵 온 몸으로 퍼져가는 따뜻한 느낌에 나 또한 잠시 정신을 놓았다.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고 해도 그 피는 달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흥분한 마음에 조금 장난기가 돌아 그 이상의 일을 해버렸다.
상처를 지운 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는 그의 앞에서 내 손을 그어 그 피를 한 방울 입 안에 흘려넣었다. 멍하니 있던 몸이 순간 부르르 떨리면서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잠시 기다리자 황홀경에 빠져 있던 그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깜빡이던 그가 나를 봤을때 살짝 웃어주자 순간 몸이 경직하는 게 눈에 띄었다.
"아.. 당신 아니.. 도대체 어떻게.. 나한테 뭘.."
"별 거 아닙니다. 하지만, 모처럼 즐겁지 않으셨나요."
"그게.."
정신이 없는 틈에 재빨리 말을 붙이고 당황스런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사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나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기억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시선을 잡아 끌어 다른 기억으로 대신 채워넣는다. 남는 건 밤에 온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정도여야만 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조종을 마치고 깨우듯 말을 건내자 약간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배웅을 해준다. 마음에 드는 손님이라는 정도 외에는 신경쓰지 않을테고 몸에도 별 문제가 없으니 금새 잊겠지.
이후 며칠동안 그 가게에 대해서는 잊고 지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게 된 것은 꽤나 우연이었다. 길을 걷다 쳐다본 가게가, 불이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판에는 불이 꺼져있어서 조금 걱정스런 마음에 들어가본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들어간지 한참이 지나도록 안에서는 나오는 기미가 없었다. 문가에 서서 기다리다가 조심스레 안쪽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가게 내부의 작업장으로 들어가자 둔한 코에도 맡아지는 것은 강한 알콜의 향기.
아무래도 이 남자는 그동안 가게에서 생활했던 모양이었다. 작게 놓인 간이침대 주변에는 몇 가지 생활 필수품 같은 것이 올망졸망 늘어져있었다. 그리고 술병 하나가 쓰러져 사방에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도 마시고 쓰러진 게 아니라 다행이군.'
이런 생각을 하며 옹그린 채로 잠든 그를 깨우려고 손을 뻗자 가슴에 품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살짝 뽑아보니 역시 죽은 아들의 것이다.
"좋은 꿈을.."
다시 한 번 손을 그어 그에게 마시게 한다. 인공적이지만 모든 것을 넘어서는 즐거움에 잠깐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있다가 진정된 후에 살며시 깨웠다. 아마도 이번이 한계일터였다. 벌써 두번이고 세번째는 꿈에서 다시 벗어나기 힘들어지니까.
며칠 새에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 사방을 둘러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흠칫 굳었다. 그 누구라도 몇번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친근감이 마구 솟아난다면 자기 방어를 하는 게 당연하다.
"죄송합니다. 들렀는데 나오지 않으셔서 실례했습니다. 이대로 잠들어계시면 안될 거 같아서.."
공손하게 말을 걸자 약간 있던 적대감은 사라지고 곧 갸냘픈 미소가 걸렸다.
"아뇨.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손님이 주인을 깨우다니.."
"그럼 피곤하신듯 하니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시면 차라도 대접하도록 하지요. 이대로 보내드리면 예의가 아닙니다."
조금 망설였지만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고 해서 이야기나 하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고 무의미한 인사 후에 나온 말은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이 가게, 손님께서 사주세요."
잠깐 어이없어하다 처음 든 생각은 '비테의 효과가 지나치게 좋았나.' 싶은 것.
하지만 사업거리를 찾고 있던 나에게 있어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도대체 저의 뭘 믿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당연한 질문이다. 저런 말을 꺼내게 된 동기 뿐만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비테의 영향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도 궁금했으니까.
"그건... 손님에게 이 가게를 맡기면 어쩌면 '영원히' 이곳을 지켜줄 수 있을 거 같아서지요."
순간 몸 속에서 뛰쳐 나가려는 짐승을 간신히 억누를때까지 걸린 시간이 5초 정도. 자기도 모르게 이빨을 드러낼뻔 했지만 참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근래 너무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 거 아닙니까. 확실히 쉬시는게.."
"아니요. 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가게를 연지도 이미 30년이 다 되어가고요. 제 가게를 찾아주는 분들 중에 특별히 밤에만 주문하는 손님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얼굴의 주름 하나 변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 건 그다지 알아채기 어려운 것도 아니지요.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손님이 그분들과 같은 존재라는 건 별로 추측하기 어려운 게 아닙니다."
"어르신의 말씀이 모두 맞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게 저에게 가게를 넘기려는 이유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댁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꽤나 마음이 편해졌으니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 이 가게 그렇게 나쁜 곳도 아니거든요. 저에게 남은 유일한 곳이라 이건 지켜냈으면 합니다. 그러니, 생각해보지 않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제 아들놈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처음에는 마스커레이드에 위반되는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수십년간 조금씩 눈치채고도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입을 연 것이 분명한 사람을 굳이 어떻게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Suit Yourself라는 가게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맨하탄, 혈족 기준으로는 엘리시움 내부에 자리잡은 맞춤식 남성양복 전문점. 낮에는 두 명의 직원이 더 있지만, 밤에는 주인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리 소문없이 알려진 곳으로 주인 혼자 일하기에 제작하는 양복의 수는 극히 제한된 곳이었다.
저곳의 앰블렘을 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가치가 올라가는 터라 노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도 같지만, 지금껏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역시 주인이 바뀌면 의미가 없는 가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뭔가 시작하기는 해야하면서 그정도의 가게를 통째로 살 능력은 안 되는 나에게는 빚을 갚아주고 그를 계속 고용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찾아간 것은 차압을 얼마 남기지 않은 날이었다.
오늘의 그는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에 가볍게 답례하며 문에 달린 표시판을 Closed로 돌려놓았지만 주인은 불안해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오셨습니까..."
"저번에 권유하신 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가게는 좋지만, 큰 짐이 붙어있다는 걸 말하지 않으셨더군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하는 말에 빙그레 웃는걸 보니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여기에 일하는 상태 그대로 샀으면 해서 말한 겁니다. 딱히 숨기려고 한 건 아니지만 기분이 상하셨나요..."
"상한 건 아니지만 듣고 싶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까지 해가면서 저를 인간 아닌 것으로 만들고 중요한 문제는 숨기신 거 아닙니까. 관심을 끌려는 목적이셨습니까?"
"아니 그렇지않아요. 그건 오해입니다. 그냥, 내가 너무 괴로워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당신이 와서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마음을 풀어줬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제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겠습니까. 부탁입니다. 가능하다면, 할 수만 있다면 나와 내 가게를 통째로 사주세요. 더이상 뭔가를 고민하고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부탁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잘못 알고 있는 지식들과 한때의 충동으로 내가 저지른 행동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어차피 숨길 것이라면 나중에 기억을 지우면 될 일, 더이상 발뺌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널 사면 모든 게 해결될거라고 생각하나?"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변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떤 길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었으면 합니다."
지독히도 피곤하게 들리는 음색. 그래서인지 그 순간 나도 그에게 끌려버렸다.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에게 죄책감이 들었지만 솔직히 놓치기 싫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나? 너의 모든 것이 내게 속하며 나 외에 다른 것을 보지 않을 것을 맹세하겠는가?"
"맹세합니다."
변한 말투와 태도에 놀란 듯하지만 고개를 숙이며 맹세한다.
"너의 몸과 영혼 모두를 바쳐 나를 섬길 것이며 내 저주를 나눠 안고 나의 레퀴엠이 끝나 스러질때까지 나와 함께 하겠는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명, 내가 가진 유일한 산 것을 받아마시고 그 결심을 내 앞에 보이도록 하라. 이것으로 너와 나의 계약이 이루어지고 너는 내 것이 될 것이다."
나 자신도 약간은 떨며 손바닥을 그어 그의 입에 비테를 흘려 넣자 몸과 마음이 동시에 떨리는 것이 보이고 이 저주받은 계약은 성립되었다. 그리고 황홀경에 빠진 채 나를 보고있는 이는 조금 전과는 다른 생경한 인물이었다.
뒤늦은 후회가 닥쳐왔지만 이로서 나도 그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니 주인된 자로서 해야할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아직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버려진 강아지마냥 나만을 쳐다보며 떨고 있는 새로운 하인에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구나. 나는 혈족 중의 혈족, 고귀한 벤트루의 일원으로 제임스라 한다. 사이어는 에드워드 말로리님이며, 피투어, 찰스의 계보를 잇고 있다. 네 주인의 뿌리를 기억하고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오늘은 쉬도록.."
별 말 없이 얼굴을 보고 있자, 얼굴을 붉히며 눈을 피한다. 그 순간 내가 해 놓은 짓에 대해 있을리 없는 욕지기를 느끼고 입을 막은 채 역시 있을리 없는 숨을 골랐다. 잠시 후, 들려오는 낮지만 조심스런 목소리.
"괜찮으십니까. 마스터."
"....괜찮아."
억지로 몸을 바로잡고 웃어보였다. 내 앞에 있는 건 앞으로 긴 세월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나의 일부니까, 이런 곳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야 없었다.
아직 긴장이 가시지 않은 그를 보고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을 잊고는 이것저것 주워섬겼다.
앞으로의 일이라거나, 이 가게의 운영에 대한 것. 혈족에 대해서라거나 비테에 대한 것들.
그리고 그러는 사이 그를 이렇게 만들어 주변에 두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내 자신이 견디기 힘들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아직 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외로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가 아는 모든 세계와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후 유령처럼 떠돌게 될 지 두려웠다.
그가 나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뻗었을지도 모른다. 수십년의 나이차이를 떠나서 갈 곳 없다는 점에서 우리 둘은 그만큼 닮아있었다.
나는.. 생경한 세계를 혼자 걷게 되는 것이 무섭다..
더이상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 두렵다..
그래도 이 약한 알맹이를 단단한 껍질로 감싸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더이상 걷지 못하게 될때까지 걸어나가야 한다.
...같이 갈 수 있다는 건 행복하다.
아직 일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회사에 나가거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하던 기억들은 먼 옛날의 추억처럼 느껴진다.
빛이 두렵지않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심장이 뛴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흡혈의 쾌락에 취해있는 시간 뿐. 그 순간만은 이미 죽어버린 나의 심장이 다시 뛰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앞으로 몇 년이나 이러한 상태로 버텨야할 지 알 수 없다. 오랜 시간을 지내온 엘더들은 익숙해져서 관계가 없어진 걸까? 내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펴봤다. 다들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이제 내가 인간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건 갈증이다. 일년 전만 하더라도 먹는거야 어떻게든 되었지만, 포식자의 입장에 선 현재로서는 그게 제일 문제랄까. 요 근래 겪었던 여러가지 사건들에 이르러서야 생존 그 자체가 커다란 목표가 되어버렸다.
뭘 어디서 찾아 먹어야 좋을까 궁리하는 꼴이라니.. 입안에서 작게 욕설을 굴린다. 그리고 익숙치 않은 포식 동물은 약간 겁에 질렸다.
다시 움직이려던 참에 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지나는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고즈녁해 보이는 건물에 처음부터 건물과 같이 한듯한 작은 간판, 내부가 보이지는 않지만 어찌보면 수줍고 어찌보면 당당한 신사복의 디스플레이가 전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앰블렘이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자신만만한 맞춤양복점인 터였다.
다행히도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모양이라 Open 표지판이 매달려 있는 가게의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갔다.
예상대로 고풍스런 향취가 풍기는 실내다. 참고용으로 걸려있는 몇 가지 천의 샘플을 제외하고는 깔끔한 인테리어. 목재로 이루어진 벽면에서는 따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딸랑거리는 문의 방울 소리가 사라진 후 한참이 지나서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슬슬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나왔다.
"어서오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안경을 벗으며 나타난 이는 그야말로 그린듯한 양복점 주인이었다. 히끗히끗 새어가는 머리카락에 단정하고 조심성이 옅보이는 얼굴. 몸의 일부인 양 자연스러워보이는 양복에 이르기까지 더하고 뺄 곳이 없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예약하셨던가요."
"아닙니다. 지나가다 가게가 보여서..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알았다고 하고는 자리를 권해줬다. 곧이어, 차와 담배가 권해지고 적당한 샘플을 내줄때까지의 동작이 너무 깔끔해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별 말 없이 한동안 샘플을 뒤적인 후 입을 열었다.
"이 가게는 연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글쎄요.. 한 25년 정도 되었군요. 막 아들놈이 태어났던 때이니.."
별로 다른 뜻이 있어서 물어본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묘하게 뒤를 끄는 말투라거나 살짝 섞여들어가는 한숨이 엉뚱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눈을 바로 보고 약간의 술수를 부렸다.
"무슨 일 있으신 모양이군요. 괜찮지 않습니까? 어차피 지나갈 사람에게 이야기해보시는 것도. 들어드릴테니 '고민 있으시면 말해보세요.'"
그 이후 듣게 된 이야기는 어찌 보면 흔한 사연이랄까.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 갑자기 자살을 했다. 그리고 유서에 남아있던 내용은 가게를 담보로 돈을 몰래 끌어다 썼고 갚지 못하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것.
정신 없는 와중에도 가지고 있던 돈으로 일단 갚을 수 있을만큼은 처리를 했지만 결국은 가게를 팔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버린 거 같다고 했다.
"아... 어쩌다가 제가 이런 이야기를 모두.. 쓸데없는 이야기라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가끔은 털어놓을 곳도 있어야지요."
이야기를 다 하고 난 후 정신을 차리자 당황하는 듯해서 적당히 웃음으로 무마시켰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가게가 팔리면... 글쎄요. 어딘가 요양원이라도 들어가야지요. 계속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작게 한숨을 쉰다. 더이상 목적도 없이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치고 지금 상태는 굉장히 침착해보였다. 그래서, 문득 나는 그가 어떤 맛일까 궁금해졌다.
잠시 손을 빌릴 수 없을까하고 말하자 갑작스런 요구에 의아해하는 그를 간단한 명령으로 무력화시키고 손목에 이빨을 박아넣는다. 경악과 갑작스런 고통에 눈을 부릅뜨는 것도 잠시, 곧 숨이 가빠지면서 표정이 풀려간다.
이 단정한 남자의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 또 누가 있었을까 하는 짖궂은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왈칵 온 몸으로 퍼져가는 따뜻한 느낌에 나 또한 잠시 정신을 놓았다.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고 해도 그 피는 달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흥분한 마음에 조금 장난기가 돌아 그 이상의 일을 해버렸다.
상처를 지운 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는 그의 앞에서 내 손을 그어 그 피를 한 방울 입 안에 흘려넣었다. 멍하니 있던 몸이 순간 부르르 떨리면서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잠시 기다리자 황홀경에 빠져 있던 그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깜빡이던 그가 나를 봤을때 살짝 웃어주자 순간 몸이 경직하는 게 눈에 띄었다.
"아.. 당신 아니.. 도대체 어떻게.. 나한테 뭘.."
"별 거 아닙니다. 하지만, 모처럼 즐겁지 않으셨나요."
"그게.."
정신이 없는 틈에 재빨리 말을 붙이고 당황스런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사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나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기억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시선을 잡아 끌어 다른 기억으로 대신 채워넣는다. 남는 건 밤에 온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정도여야만 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조종을 마치고 깨우듯 말을 건내자 약간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배웅을 해준다. 마음에 드는 손님이라는 정도 외에는 신경쓰지 않을테고 몸에도 별 문제가 없으니 금새 잊겠지.
이후 며칠동안 그 가게에 대해서는 잊고 지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게 된 것은 꽤나 우연이었다. 길을 걷다 쳐다본 가게가, 불이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판에는 불이 꺼져있어서 조금 걱정스런 마음에 들어가본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들어간지 한참이 지나도록 안에서는 나오는 기미가 없었다. 문가에 서서 기다리다가 조심스레 안쪽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가게 내부의 작업장으로 들어가자 둔한 코에도 맡아지는 것은 강한 알콜의 향기.
아무래도 이 남자는 그동안 가게에서 생활했던 모양이었다. 작게 놓인 간이침대 주변에는 몇 가지 생활 필수품 같은 것이 올망졸망 늘어져있었다. 그리고 술병 하나가 쓰러져 사방에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도 마시고 쓰러진 게 아니라 다행이군.'
이런 생각을 하며 옹그린 채로 잠든 그를 깨우려고 손을 뻗자 가슴에 품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살짝 뽑아보니 역시 죽은 아들의 것이다.
"좋은 꿈을.."
다시 한 번 손을 그어 그에게 마시게 한다. 인공적이지만 모든 것을 넘어서는 즐거움에 잠깐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있다가 진정된 후에 살며시 깨웠다. 아마도 이번이 한계일터였다. 벌써 두번이고 세번째는 꿈에서 다시 벗어나기 힘들어지니까.
며칠 새에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 사방을 둘러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흠칫 굳었다. 그 누구라도 몇번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친근감이 마구 솟아난다면 자기 방어를 하는 게 당연하다.
"죄송합니다. 들렀는데 나오지 않으셔서 실례했습니다. 이대로 잠들어계시면 안될 거 같아서.."
공손하게 말을 걸자 약간 있던 적대감은 사라지고 곧 갸냘픈 미소가 걸렸다.
"아뇨.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손님이 주인을 깨우다니.."
"그럼 피곤하신듯 하니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시면 차라도 대접하도록 하지요. 이대로 보내드리면 예의가 아닙니다."
조금 망설였지만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고 해서 이야기나 하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고 무의미한 인사 후에 나온 말은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이 가게, 손님께서 사주세요."
잠깐 어이없어하다 처음 든 생각은 '비테의 효과가 지나치게 좋았나.' 싶은 것.
하지만 사업거리를 찾고 있던 나에게 있어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도대체 저의 뭘 믿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당연한 질문이다. 저런 말을 꺼내게 된 동기 뿐만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비테의 영향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도 궁금했으니까.
"그건... 손님에게 이 가게를 맡기면 어쩌면 '영원히' 이곳을 지켜줄 수 있을 거 같아서지요."
순간 몸 속에서 뛰쳐 나가려는 짐승을 간신히 억누를때까지 걸린 시간이 5초 정도. 자기도 모르게 이빨을 드러낼뻔 했지만 참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근래 너무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 거 아닙니까. 확실히 쉬시는게.."
"아니요. 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가게를 연지도 이미 30년이 다 되어가고요. 제 가게를 찾아주는 분들 중에 특별히 밤에만 주문하는 손님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얼굴의 주름 하나 변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 건 그다지 알아채기 어려운 것도 아니지요.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손님이 그분들과 같은 존재라는 건 별로 추측하기 어려운 게 아닙니다."
"어르신의 말씀이 모두 맞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게 저에게 가게를 넘기려는 이유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댁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꽤나 마음이 편해졌으니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 이 가게 그렇게 나쁜 곳도 아니거든요. 저에게 남은 유일한 곳이라 이건 지켜냈으면 합니다. 그러니, 생각해보지 않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제 아들놈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처음에는 마스커레이드에 위반되는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수십년간 조금씩 눈치채고도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입을 연 것이 분명한 사람을 굳이 어떻게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Suit Yourself라는 가게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맨하탄, 혈족 기준으로는 엘리시움 내부에 자리잡은 맞춤식 남성양복 전문점. 낮에는 두 명의 직원이 더 있지만, 밤에는 주인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리 소문없이 알려진 곳으로 주인 혼자 일하기에 제작하는 양복의 수는 극히 제한된 곳이었다.
저곳의 앰블렘을 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가치가 올라가는 터라 노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도 같지만, 지금껏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역시 주인이 바뀌면 의미가 없는 가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뭔가 시작하기는 해야하면서 그정도의 가게를 통째로 살 능력은 안 되는 나에게는 빚을 갚아주고 그를 계속 고용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찾아간 것은 차압을 얼마 남기지 않은 날이었다.
오늘의 그는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에 가볍게 답례하며 문에 달린 표시판을 Closed로 돌려놓았지만 주인은 불안해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오셨습니까..."
"저번에 권유하신 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가게는 좋지만, 큰 짐이 붙어있다는 걸 말하지 않으셨더군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하는 말에 빙그레 웃는걸 보니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여기에 일하는 상태 그대로 샀으면 해서 말한 겁니다. 딱히 숨기려고 한 건 아니지만 기분이 상하셨나요..."
"상한 건 아니지만 듣고 싶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까지 해가면서 저를 인간 아닌 것으로 만들고 중요한 문제는 숨기신 거 아닙니까. 관심을 끌려는 목적이셨습니까?"
"아니 그렇지않아요. 그건 오해입니다. 그냥, 내가 너무 괴로워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당신이 와서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마음을 풀어줬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제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겠습니까. 부탁입니다. 가능하다면, 할 수만 있다면 나와 내 가게를 통째로 사주세요. 더이상 뭔가를 고민하고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부탁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잘못 알고 있는 지식들과 한때의 충동으로 내가 저지른 행동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어차피 숨길 것이라면 나중에 기억을 지우면 될 일, 더이상 발뺌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널 사면 모든 게 해결될거라고 생각하나?"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변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떤 길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었으면 합니다."
지독히도 피곤하게 들리는 음색. 그래서인지 그 순간 나도 그에게 끌려버렸다.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에게 죄책감이 들었지만 솔직히 놓치기 싫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나? 너의 모든 것이 내게 속하며 나 외에 다른 것을 보지 않을 것을 맹세하겠는가?"
"맹세합니다."
변한 말투와 태도에 놀란 듯하지만 고개를 숙이며 맹세한다.
"너의 몸과 영혼 모두를 바쳐 나를 섬길 것이며 내 저주를 나눠 안고 나의 레퀴엠이 끝나 스러질때까지 나와 함께 하겠는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명, 내가 가진 유일한 산 것을 받아마시고 그 결심을 내 앞에 보이도록 하라. 이것으로 너와 나의 계약이 이루어지고 너는 내 것이 될 것이다."
나 자신도 약간은 떨며 손바닥을 그어 그의 입에 비테를 흘려 넣자 몸과 마음이 동시에 떨리는 것이 보이고 이 저주받은 계약은 성립되었다. 그리고 황홀경에 빠진 채 나를 보고있는 이는 조금 전과는 다른 생경한 인물이었다.
뒤늦은 후회가 닥쳐왔지만 이로서 나도 그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니 주인된 자로서 해야할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아직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버려진 강아지마냥 나만을 쳐다보며 떨고 있는 새로운 하인에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구나. 나는 혈족 중의 혈족, 고귀한 벤트루의 일원으로 제임스라 한다. 사이어는 에드워드 말로리님이며, 피투어, 찰스의 계보를 잇고 있다. 네 주인의 뿌리를 기억하고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오늘은 쉬도록.."
별 말 없이 얼굴을 보고 있자, 얼굴을 붉히며 눈을 피한다. 그 순간 내가 해 놓은 짓에 대해 있을리 없는 욕지기를 느끼고 입을 막은 채 역시 있을리 없는 숨을 골랐다. 잠시 후, 들려오는 낮지만 조심스런 목소리.
"괜찮으십니까. 마스터."
"....괜찮아."
억지로 몸을 바로잡고 웃어보였다. 내 앞에 있는 건 앞으로 긴 세월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나의 일부니까, 이런 곳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야 없었다.
아직 긴장이 가시지 않은 그를 보고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을 잊고는 이것저것 주워섬겼다.
앞으로의 일이라거나, 이 가게의 운영에 대한 것. 혈족에 대해서라거나 비테에 대한 것들.
그리고 그러는 사이 그를 이렇게 만들어 주변에 두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내 자신이 견디기 힘들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아직 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외로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가 아는 모든 세계와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후 유령처럼 떠돌게 될 지 두려웠다.
그가 나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뻗었을지도 모른다. 수십년의 나이차이를 떠나서 갈 곳 없다는 점에서 우리 둘은 그만큼 닮아있었다.
나는.. 생경한 세계를 혼자 걷게 되는 것이 무섭다..
더이상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 두렵다..
그래도 이 약한 알맹이를 단단한 껍질로 감싸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더이상 걷지 못하게 될때까지 걸어나가야 한다.
...같이 갈 수 있다는 건 행복하다.
2006/08/09 12:26
2006/08/09 12:26
Posted by Sih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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